매체, 매체예술 그리고 철학 , 박영욱8; 기계개념 – Delueze 2 / Malevich / Norbert Boltz

매체, 매체예술 그리고 철학 , 박영욱8; 기계개념 – Deluez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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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에게 기계 : 절단들의 체계 systeme de coupures
절단 –> 분절을 함축 ex. 음경은 오줌의 흐름을 전달 –> 즉 ‘흐름’에 연관 –> 흐름을 생산한다.–> 절단된 기계는 동시에 다른 분절된 기계와의 통합, 통접(connexion)을 의미 –> 기계의 성립은 애초에 다른 기계들을 전제함

젖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입의 무한한 다른 가능성은 제약된다–> 빠는 기능 이외의 깨물거나 공기를 내뿜는 기능과는 분리,이접(disjonction)된다 –> 타기능과의 이접은 즉 그 타기능으로의 이탈 가능성을 내재한다.

절단으로부터 만들어진 기계는 통합(통접)적인 동시에 분리(이접)적이다.
통접 + 이접 = 연접 (conjonction)

들뢰즈에게 기계 : 연접적인 체계 – 통접이면서 동시에 이접적인 이율배반적 체계이다. 이 이탈의 가능성에서 기계가 예상치 못했던 초과적인 효과, 즉 잉여를 획득할 수 있다. ex. 입으로 젖을 채취하는 기계의 기능이 그 과정에서 묘한 성적 만족감을 얻게 되는 것.
–> 기계는 기존의 통접관계 속에서 자의적/ 타의적으로 억압된 또 다른 체계로 이탈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들뢰즈의 기계시각 근대적 시각
근대적 기계 : 선형적/반복적 : 확립된 완결된 체계
들뢰즈의 기계 : 변형, 이탈, 재배치가 가능한 유동적인 체계 – 연접적 체계
들뢰즈에게 반복 : 근대적 의미가 아니다. 반복은 생성의 의미를 갖는다. 반복은 즉 기계라는 차이성의 체계를 만든다. ex. 피아노를 치는 손은 손의 다른 기능을 제한하고 피아노 건반에 적합하게 훈련함으로써 기능을 수행한다 –> 배치 (agencement) 피아노 건반에 적합하게 손가락을 배치한다. –> 그러나 동시에 손가락을 그 외의 무수한 기능으로 재배치 될 수 있는, 변형할 수 있는 가능성 내재–> 언제들지, 얼마든지, 피아노를 치는 기계가 아닌 다른 기계로 변형, 재배치 할 수 있는 가능성 있다 —> 손-기계는 피아노 기꼐와 연접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 어떤 필연적인 연관도 없다.

들뢰즈의 기계는 이처럼 재배치에 의해서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한 체계를 의미한다.
–> high-technology(디지털 기술, 로봇공학, 분자생물학, 나노공학) 바탕을 이루는 현재적 기계 개념과 공명적 관계.

현재의 하이테크놀로지 기계 : 반사적 기계 유형 : 계산주의(근대적)가 아니라 포섭구조(subsumption architecture)로 작동한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의 관계에서 생긴 변화들을 스스로 지각, 자신의 작용을 수정하는 속성을 지닌다. –> 인공지능 로봇 : 완전한 계산장치가 아니라 환경과의 무한한 반복적 경험 속에서 자신을 유형화한다
반복적 경험, 유형화 –> 변형의 가능성 : 언제든지 다른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다른 배치로 변형 가능

들뢰즈의 기계개념: 기계가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를 생산하고 변형의 가능성을 그 속에 포함함으로써 스스로를 유형화하는 유동적인 체계라는 것. 일사불란한 선형적 체계가 아니라 서로 얽히고, 연속적이 아니라 단절적인 체계이다.


Virilio/ Flusser / Boltz등의 매체이론가들이 보기에 문자는 선형적이고 변형불가능함 –> 문자가 현실세계의 대상을 지시하는 표상이기 때문이다 –> 문자 언어는 세계 자체를 선형적이고 체계적이며, 변형 불가능한 것으로 분절하는 수단이다
= 전통적 미술에서의 이미지와 유사 :과거회화의 이미지는 문자적/지시적 : 문장을 이루고 있는 문자들처럼 분명한 의미와 완결된 서사구조를 전제하며 선형적 체계를 이룬다

매체예술의 이미지 : 항상 움직임에 의해서 변형되고, 제한적이지 않으며, 재현적이지 않고, 탈서사적이다.–> Wiebel / Boltz는 매체예술을 이러한 맥락에서 반예술 Anti-Kunst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본다. –> 문자처럼 선형화된 재현적 관계를 벗어난 회화를 추구하는, 의식적이고 반성적인 운동의 성격을 계승

Malevich와 Boltz, 매체예술
말래비치의 suprematism: 볼츠는 메체예술이 슈프레마티즘을 계승하는 것으로 보았다. 구체적인 대상을 제거하고 오로지 내면적인 세계만을 표현하는 예술형식.
말레치비가 객관적인 대상재현을 거부하는 이유 : 객관적 세계 속에 어떤 것도 안정되거나 고정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는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선형적 체계를 이루고 있지 않고,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처럼 고정된 것도 아니다. –> 즉 문자혹은 문자에 상응하는 이미지로 세계를 재현하는 것은 기만이다.
근대의 기계론은 변형과 이탈을 용납하지 않는다. 세게는 유일신의 체계이다. 유일신의 고정적인 mechanism에 저항한다.

매체예술의 이미지 : 어떤 것을 표현하거나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회화 자체에 대한 반성을 나타나는 메타적인 이미지의 성격이라는 suprematism과 동일하다.
매체예술의 이미지는 interactive/ interface : 관객에 따라서 가변적이고 상호작용한다. 이미지가 비대상적이라는 것, 근본적으로 문자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함축한다. –> 기계에 대한 담론을 함축한다.
매체예술이 문자가 아닌 고정되지 않는 변형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은 새로운 기계, 하이테크놀로지의 담론을 반영하는 성격을 일부분 지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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