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글. 빌렘 플루서

새로 나온 책을 읽어나가던 중에 생각해보자니- 진중권은 늘, 항상, vilem flusser를 좋아하는 듯 하다. 다른 media theorist는 소홀히 하면서 flusser만 편애하는 느낌도 들 정도이다.
그러나 플루서의 이론에는 허점도 많다. 서구 리서치 현장에서- 내 경우 미국 석사/ 런던 박사 과정- 체감한 바에 의하면, 플루서의 이론을 따르는 사람은 그렇게 많아뵈지 않는다.
내 박사논문도 초반에는 플루서를 주요 reference로 삼고 영향을 많이 받으려는 듯 하였지만, 결국엔 방향을 틀었다. 왜냐하면 그의 논지의 fundamental을 이루고 있는 이분법이, 실은 이 mixed reality에 적용하기엔 oversimplified이기 때문이다. Flusser의 글들은 매우 좋다. 사실이다. 나 또한 초반에는 이 사람의 theory를 대부분 따르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practitioner로서 내가 느끼고 있던 문제점들을 잘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른 이론가들의 글이나, 이후에 나오는 research들을 공부할 수록, 또한 나 스스로 이 디지털 매체를 지속적으로 다루면서 작업을 발전시켜 나갈수록, 그의 논지에서 취사선택해야 하는 부분들이 무엇인지 조금씩 명확해 진다.

진중권은 그의 책에다가 “현실과 가상이 중첩하는 파타피직스의 세계”라는 그럴싸한 부제를 지어놓고, Flusser의 이론을 그대로 답습한다- 답습하는 중이다. (실은 아직 다 안 읽었는데, 아직까지는 그러해 보인다.) 일례로, ‘문자 문화의 종언’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중첩이라며, 그런데 종언이라니, 감히 어디서. 책을 쓰시는 분이. 그러심 되나.
산업혁명 이후로 개발된 매체의 경우, 종말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비활성 모드에 들어가는 것인지, 죽어버리지는 않는다.
종언,이라는 단정적인 어휘는 academy나 research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건 에세이가 아니잖아. (에세이였나?? )
흠.
이 사람은 왜 그렇지? 기본적으로, 왜 이렇게 Flusser를 신봉하는 건인지. (내가 진중권을 안 좋아한는 것도 맞다, 인정. 그래도 책은 읽는다.) 책 끝까지 읽을 때 까지, 오류나 한계를 지적하는 부분이 있는지 주목해야 겠음.

물론 글재주도 있는 사람이고 통찰력도 값어치 있는 부분들이 많다. 그러나 역시 기본적으로 Flusesr의 이론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단견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왜 굳이, 본인은 Flusser를 따른다고, 재차 강조하면서 본인의 논지에 강한 제약을 거는건지? 1권에 이어 2권까지 나온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만.

다음은 내 PhD thesis paper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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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iginality of Veiem Flussers’ insights on technical image is valuable resource for media studies. He insightfully deciphered the codes of materiality disseminated under the apparatus of the media. However he is often classified as a speculative thinker because of his systematical mistakes of unfolding his logics. In The Perspective of Print, Friedrich Kittler disputes Flusser’s concrete distinction between images and writing in terms of their linearity. He points that Flusser’s oversimplification ignores the existence of multiple regimes of linearity. In fact, encyclopedia or the Bible are not read in a linear manner. His perspective seems too monolithic to be applied to the complex digital discour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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