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잘린드 크라우스의 ‘post- medium condition’ 연구 : 안해숙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post-medium condition’ 연구 : 안해숙

홍익대학교, 2014

이 글은 크라우스의 포스트 미디엄에 대한 글들을 거의 다 잘 정리해 두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한테 도움이 된다. 

크라우스는 반 설치미술 = 설치미술이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스펙터클 화 되는 것에 반대. installation art = spectacle = capitalism : 시장논리에 잠식되는 미술에 반대함.

크라우스는 매체 개념을 바꾸려 한다. 매체 –> Technical support (기술적 지지체) : I don’t think it would catch on.

post-medium이라고 한 데에서 드러나듯 Greenberg의 Medium-specificity와 거리를 둔다.

내가 생각하기에, 크라우스의 이러한 담론 : Post-medium condition은 ‘비평의 위기’이지 미술의 위기가 아니다. 자기 자신이 개발하고 October를 platform삼아서 현대미술을 지금껏 지배해왔던 postmodernism의 philosophy에 기댄 미술비평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가능성 모색, 스스로 돌파구를 찾는 움직임 인데, 약간 자가당착에 빠지는 거 같아 보인다. 

Ⅰ.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영향력과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비평의 한계

크라우스가 주도한 후기 모더니즘 미술 비평 시기를 ‘철학적 미술 비평(philosophical art criticism)’.

많은 작가와 평론가들이 이론을 통한 비판적 분석에 크게 고무되었다. 미술이 점점 더 이론적이고 개념 중심적이 되어가면서, 비평에 의지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든 현대 미술의 경향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4)

옥토버』가 제시한 철학을 통한 미술작품의 분석 혹은비평 방식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 예술을 해석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되었다. (15)

비평가이자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에서 미술 비평을 가르치는 David Levi Strauss“우리가 최근에 겪고 있는 위기, 즉비평으로 다뤄질 수 있는 상대적 가치의 위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25) 즉 미술의 고유한 가치보다 후기 자본주의에 동화되어버린 미술과 그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비평의 문제라는 것이다.

최근 크라우스는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주장한 매체 특수성 (specificity-painting)과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TV) 의 매체의 비특수성(non-specificity) 사이에서 포스트-미디엄의 조건(Post Medium Condition-photography)을 피력하고 있다.

크라우스에게 매체 = memory = support= expanded field

크라우스는 비물질적인 양상으로 나타나는 설치미술을 반대한다. 그녀가 선호하는 것은 장르의 경계를 유지하면서 medium-specificity를 작가 고유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작업들이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technical support는 매체 개념 + 작가의 컨셉 으로 이해하면 될 듯 하다. 물질성 자체만 다루는 self-referential한 모더니즘 그린버그의 매체 개념과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크라우스는 또한 conceptual art 를 Kitsh와 동일하게 취급했다. 개념미술은 결국 상품화 되면서, 미술 작품과 자본주의 매체간의 유통 관계, 홍보와 전시 흥행 등에 초점을 돌리도록 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작품을 사고파는 과정을 systemize하면서 미술의 상품화를 공공연하게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크라우스에게 conceptual art는 아방가르드 예술이 아니라, 키치의 화신이며, 의미없는 공허한 동어반복 tautology이다. 

 크라우스가 피력하는 것은 매체는 기억을 유지시키는 주요한 기능을 하며 매체는 확장된 장(medium as expanded field)으로 기능한다는 것. 크라우스는 매체의 특수성을 방어하되, 모더니즘에서 회화로 대변되는 매체의 특수성(specificity)와는 선을 긋는다. 이는 전통적인 매체의 영역의 특권적인 지위가 사라졌으며 그 유효성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더니스트적인 매체 개념에 대항한 새로운 대안으로 ‘포스트 -미디엄(Post-Mediu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반그린버그적 관점을 강조하기 위해 ‘기술적인 지지체(technical supports)’라는 용어사용.

Guy Debord : Society of Spectacle : “스펙터클은 고도로 축적되어 이미지가 된 자본”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이미지로 생활 가운데 녹아든 상품이 과거 종교와 신화가 충족했던 사회적 기능을 대신한다. 스펙터클은 시각 세계의 남용이나 이미지들의 대량 유포 기술의 산물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스펙터클은 현실적이며 물질적 으로 번역된 세계관이며 ‘겉으로 보이는 것은 좋은 것이며, 좋은 것은 겉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스펙터클이 원칙적으로 요구하는 태도는 수동적. 스펙터클화 된 미술이란 자본주의시대의 권력의 도구가 되어 소비를 위한 이미지를 생산하는 기능에 충실한 미술을 뜻하게 되었다.

Frederic Jameson : 미디어 테크놀로지 게이즈 즉 ‘이미지 사회’. 문화의 영역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고 이미지 문화가 일상을 지배하여 모든 것이 시각적이고 문화적으로 번역된 사회이다. 소비를 위한 이미지로서의 스펙터클을 넘어 설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자 미술(혹은 미학적 성취)은 비평, 미술사를 넘어 작품을 만드는 미술가의 통제까지도 벗어나게 되어버렸다.

후기모더니즘 미술 비평을 이끌어가던 크라우스와 여러 비평가들에게도 이러한 현상은 현대 미술의 큰 위기 –> 현대 미술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미술을 규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자문.

Post-medium condition

그는 매체의 중요성을 1990년대 말 이후부터 다시금 강조하며 언급하기 시작했다. 크라우스는 미술 제작 혹은 존재의 근간이 될 수 있는 것이 매체라고 여겼는데, 여기서의 매체는 전통적인 예술에서 논의되는 미술 장르 – 회화, 조각-가 아닌 일련의 규칙을 제공하는 틀로서의 매체이다. 크라우스는 이러한 새로운 매체의 역할을 ‘기술적인 지지체(technical support)’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크라우스는 자신이 ‘매체(medium)’를 대신하여 ‘기술적인 지지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하며,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체’라고 하면 떠올리는 전통적인 미학적 장르에 대한 긍정적인 연상을 피하기 위해 서라고 언급한다. 여기에서도 역시 모더니즘의 형식적이면서도 의미 가치가 부여된 용어와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또한 현대 미술에서 전통적인 매체 구분의 의미가 점차 사라지고 쇠락해 감에 따라 ‘기술적인 지지체’라는 것이 좀 더 포괄적으로 ‘매체’의 의미와 역할을 대신 할 용어로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기술적인 지지체’는 물리적인 실체가 아닌 현대 미술가들이 작품 안에서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물이라고 말한다.

내 해석 : 즉 technical support라는 것은 기존의 매체 + 작가의 개념 정도로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counterintuitive하다. 한창 포스트모더니즘 비평으로 나갈 당시에는 구조주의적 모델로 접근해서 시간성, 역사성 보다는 구조 자체로 작업을 해석했던 크라우스는 따라서 작가의 개인적 배경 의도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작가의 개념을 매체 개념에다가 접목시키고, 합체시키고 있다.

technical support는 작가고유의 시각 언어라고 이야기 한다. 그녀 논리의 변화인가, 타협인가, 배반인가. 

크라우스는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매체를 가지고 작업하는 루샤가 작품 간의 연결성을 위해 매체를 설정하고 그 매체를 위한 규칙을 만들고 적용한 점이 놀랍다고 말한다. 크라우스가 특별히 루샤에게서 발견한 특징은 그의 기술적 지지체가 작가의 임의적 선택이 아니라, 작가가 속해 있는 사회, 경제적인 맥락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후기구조주의 사회의 반영이면서도 개념 미술의 영역에서 갖는 미술사적 의의는 여전히 유지할 수 있는 이유였다.

기술적인 지지체는 물질이 될 수도 있지만 개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작가의 작품을 통일성 있게 묶어주는 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규칙은 무작위로 선택되기 보다는 작가의 개인적인 세계와 사회적 상황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그 규칙의 발현이 특정한 형태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 동시대 예술의 상황에도 부합한다. –> 크라우스가 제시한 이 개념이 좀 너무 자의적이지 않나? 

처음에 이 용어를 사용한 건 Felix Guattari였는데, 바로 죽는 바람에 지속되지를 못했다. – -;;;

크라우스는 Voyage(1999)에서 처음으로 사용했고, 그 이후 Two Moments from the Post-Medium Condition(2006) 등등에서 지속적으로 밀고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매체 개념의 재논의를 위해 크라우스는 영상 매체에 대해 언급한다. 초기의 비디오는 기술적인 진보로 받아들여졌고 작가들에게는 즉각적인 현상학적이고 나르시즘적인 경험이 가능하다는 측면이 부각되었다. 그러나 영상이 사실은 먼 장소에서 전기 신호의 원격 수신과 송신을 통해 구성되는 파편적인 방송의 매체라는 사실에 대한 논의와 함께 이론가들은 영상이 곧 ‘구조적인 이종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공론화시켰다. 영상은 영상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매체를 찾기가 어렵다. 1970년대 작가들은 아방가르드 영화- 예를 들어 구조 영화(structuralist film)62) -를 통해 이러한 비디오 매체 특정성을 탐구하는 일련의 과정이 있었다.

브로타스의 작업은 작가의 기술적인 지지체를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 전체가 매체의 확장에 대한 하나의 은유로 작동하며 크라우스가 생각하는 ‘포스트-미디엄 조건(post-medium condition)’을 가장 정교하고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크라우스는 매체의 역할과 개념이 더욱 더 확장되었음을 확신하게 되었으며, 그에 대한 결과물이 2011 발행된 『언더 블루 컵 (under blue cup)』이다.

크라우스가 2011년 출간한 단행본『언더 블루 컵 (Under Blue Cup)』의 저술 계기는 저자가 직접 겪은 질환과 그 회복 과정 때문이었다. 1999년 동맥류(aneurysm)에 걸려 한 달간 혼수상태 –> 재활 치료는 그림과 글자가 적힌 카드를 이용해 잃어버린 기억을 되돌리는 훈련. –>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 마저 사진과 이미지를 기억을 발견하게 과정 자체가 크라우스에게는 ‘매체’에 관한 새로운 깨달음 –> 주체가 매개를 통해 기억을 되찾는 이 은유를 통해 크라우스가 깨닫게 된 것은 매체가 곧 기억이고 지지대라는 사실 –>

medium = memory = support = 규칙

크라우스는 기호학 : 언어기호에 대한 철학적 전통과 근대 유럽 언어학의 사이에서 파생된 학문. 창시자는 소쉬르 (Saussure)영향 많이 받았다. Greimas의 파리 기호학파 영향. 크라우스는 포스트 모더니스트의 입장에서 그레마스 기호학을 도입하여 새로운 분석의 장을 열었다. 기호의 의미가 작용하는 과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의미 주고의 분석에 집중했다.  

크라우스는 미술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진화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역시도 하나의 구조라는 것에 동의하며 따라서 지금까지의 역사적 미술 서술 방식에 반대 한다. 그녀는 통시적 해석을 거부한다. 역사적 진행과 관계 없이 작업 내부의 구조에 의해서 해석한다.

이에 반대하는 것이 Frederic Jameson : 그는 해석은 역사 +구조 로 해야 한다고 보았다. 통시적 개념이 필요하다. 그가 생각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 현상은 모더니즘과의 단절을 뜻하지 않으며 옛 것과 새 것이 서로를 참조하고 모방하여 나타나는 혼성모방의 형태로 발전한다고 말한다

암튼 이러한 구조주의, 포스트모너디즘의 특징 : 저자의 의도가 의미 형성에 끼치는 영향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점. –> 저자의 죽음 (Barthes)

그녀는 그레마스이론 방식을 통해 분석함으로써 미술가의 열정과 천재성, 성장 배경이나 예술에의 의지를 제외 하고 미술에 대한 과학적이고 논리적 분석을 획득하고자 하였다. 그러면서도 역사적이고 유기적인 발전이라는 전제에 얽매이지 않는 통로를 발견한 듯이 보인다. 따라서 기존의 모더니즘 이론으로는 기치를 부여받을 수 없었던 포스트모더니즘 미술들에 대한 새로운 분석이 가능했다. –> 아마도 모더니즘을 계승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통시성 거부한 것 같다. 

확장된 장으로서의 매체 : Expanded field

모더니즘 미술의 순수성은 허구임이 밝혀지게 되고 포스트모더니즘 범주의 작품들 안에서는 형식에서의 의미 확장 뿐 아니라 그 동안 미술에서 다루지 않았던 여러 이항 대립적 개념의 확장도 이루어졌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작가로서의 주체, 작품의 유일성, 젠더, 장소, 배경등과 같은 개념들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 그것이다. 크라우스의 이론은 이처럼 모더니즘 이론이 다루지 못했던 포스트모더니즘 범주의 미술 작품들의 해석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 기반에는 형식적 모더니즘 이론에 대한 비판. 미니멀리즘 조각의 이상은 사라지고 다시 장소, 배경, 관객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의미를 구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시도들에 대한 재해석이 가능해졌다.

 modernism : self-reference –> postmodernism : expanded field

크라우스는 또한 Marshall McLuhan에 반대적 입장: 크라우스에 따르면 맥루한은 매체의 비특수성(non-specificity)에 환호하지만 매체의 ‘메시지’ 는 언제나 또 다른 것에 대해 말하기 때문에 중립적일 수 없고 매체보다 선행한다. 따라서 매체 자체는 메시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확장된 장으로서의 매체 도식이 있다 : 구조주의의 기호 사각형에 착안해서 만든 모델이다. 키치의 반대 영역에는 기술적인 지지체(technical support)가 자리하고 있다. 기술적인 지지체는 작가의 고유한 역사 안에서 매체를 대체하며 물질적인 현존을 나타내기 보다는 고유한 특징이 된다.

크라우스가 활용한 기호 사각형에 대한 비판 : 예술가의 창작 욕구에 근거해서 예술품이 창작된다는 전통적인 견해와 역사적 시대성을 피해 광범위한 문화적, 사회문화적 발전양상으로서 미술 양식의 변화를 비교할 수 있게 된 대신에, 그 변화가 왜 의미 있는 변화인지에 대해서는 역사적 설명을 보충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봉착했다. 작가와 시간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비교분석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크라우스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정교한 연대기적인 계보를 구축하는 접근과는 다른 형식사에 대한 사유이고, 논리적인 구조의 관점으로부터 역사적인 과정을 바라보는 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Round table에는 크라우스의 약간 모순적 입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저자들의 개별적 견해는 지키면서도 거시적인 논의를 함께 정리하려는 시도인데, 이 때문인지 이 책에서는 역사적, 이론적, 비평적 논의가 혼재되어 있다는 인상이다. 그들이 각 주제에 관한 역사적인 관점과 비평적 관점을 동시에 유지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예술적 실천들에 대해 선별할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십년이 넘는 기간 동안 논의되어 온‘설치’라 불리는 저속한 예술의 스펙타클로 인해 이 책의 저술이 촉발 되었다고 말했다. ‘확장된 장으로의 매체’에서는 설치(installation)와 키치(kitsch)의 대항, 혹은 대안으로서 기술적인 지지체(technical support)와 전통적 매체(medium)가 존재한다. 크라우스 자신의 ‘매체’개념이 매체의 물질성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매체의 개념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그린버그와 같은 의미의 매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라우스가 예술을 고급과 저급으로 나누는 것, 키치라는 개념을 다시 가져오는 것은 이전의 그가 취한 중립적 입장과는 사뭇 다르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새로운 주장이 다시 모더니즘의 귀환, 즉 형식주의의 귀환이라는 비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Round table: ‘기술적인 지지체’로의 회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다른 저자들은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할 포스터는 크라우스의 기술적인 지지체로서의 매체 개념이 자의적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브 알랭-브아는 크라우스가 다시 제시하게 된 키치라는 용어의 한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의문을 제시한다. 키치는 이미 낡은 개념이며, 스펙터클로 대체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벤자민 부클로는 기술적 지지체를 통한 모더니즘의 연속성을 강조하려는 크라우스의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모순을 지적한다. 바로 ‘보수화’89)의 문제이다.

결론

‘설치 미술’은 천박한 미

술의 스펙터클이며 키치라고 말하는 것은 통해 알 수 있듯이 크라우스는 설치 미술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 여기서 의미하는 설치 미술은 자본과 결탁한 일회적 혹은 이벤트적인 설치 미술을 뜻한다. 그러나 이미 미술 현장에서는 이미 너무나 널리 그리고 깊이 설치미술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의 설치 미술은 자신을 도구화 시킬 뿐만 아니라 상품화 하는 것에 어떠한 죄의식이 없다. 또한 현대 미술계에서는 디자인과 순수 예술의 경계가 점차 무뎌지고 디지털 영역이 확대되면서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통해 작품 제작과 상품 제작의 경계의 흐려짐 또한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크라우스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가히 염려스러운 광경이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자포자기 하거나 현실에 안주하고 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네트워킹의 활용과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통해 더욱 다층적이면서도 포스트모더니즘 제도와 공간을 활용하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은 점점 더 빨리 변화되고 있으며 이 변화의 속도를 따르지 못한다. 크라우스의 이론이 여전히 설득력이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역할을 물려주고 자신이 이끌어왔던 20세기 후반의 미술 담론들이 폐기되어 가는 것을 목도해야 하는 날이 다가올 것이다.

Advertisements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