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의 현상학에서 관계의 미학으로 : 정은영

코너의 현상학에서 관계의 미학으로  : 정은영

이 글에서 코너에 대한 부분은 내 spatiality로 연결가능하다. 

『관계의 미학』(1998)의 저자 니콜라 부리요(Nicholas Bourriaud)는 예술을 “만남의 상태”라고 정의한다.1 만남의 상태와 관계적인 형식. 그가 제안하는 예술 개념이다. 그러나 예술의 정의나 개념이 부리요의 주요 관심사는 아니다. 오히려 그가 관심을 두는 것은 오늘날 예술이 우리의 삶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또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그는 미적 형식 form으로부터 형성 formation으로의 전환 이야기함 : 고립된 주체가 개별 대상 속에서 관조하는 완성된 미적 형식(form)에 머물지 않고, 상호주관적인 주체가 자신이 처한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관계를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인 형성(formation)을 지향

유연하고 개방적, 일상적, 구체적인 관계의 예술. 이것은 기존 매체의 예술 뿐 아니라, 퍼포먼스, 설치 등. 나아가서 집회, 축제, 파티 등 일시적인 연합과 가변적 커뮤니티를 통해 관계미학을 실천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예술은 우리의 삶에 실질적으로 유용하며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이다. –> 여기에는 부리요의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이 담겨있다.

Micro-utopia : 그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불가능 한 것이 아니고,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 이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의 ‘ou-topos(no place)’가 아니라 ‘아직 실현되지 않은 좋은 곳’이라는 의미의 ‘eu-topos(good place)’ 말하자면 ‘가까이 근접해 있는 상생과 공존의 세상’. –> 이것은 사막화된 자본주의의 영토 위에 상생과 공존의 순간들을 구체화하는 전시는 그 자체가 마이크로 유토피아에 가깝다.

저자는 여기에서 전시장의 코너에 주목하게 된다. : 나는 전시 공간 구석의 후미진 곳인 코너의 점유와 활성화에 주목한다. 이 관계적인 공간. –> 항상 거기 있었으나 어느 순간에 와서야 비로소 체험의 대상이 된 코너는 현대미술의 ‘발견된 공간’이다.

그 예로 드는 작업 

<0-10 마지막 미래파 회화전> (1915, 러시아 )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 <Black Square>  / 타틀린 <Corner Relief>

말레비치 : 아름다운 코너라 부르는 이 공간은 말레비치에게 끝과 시작,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지점이자,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장소였다.

타틀린 :  <코너 릴리프(Corner Relief)>는 코너라는 구체적인 장소의 특성에 반응하고 의존하는 유연하고 개방적인 구축물이었다.예술과 삶을 분리하는 액자나 좌대 등은 찾아볼 수 없다.

말레비치와 타틀린의 지향은 코너로 수렴되고 코너로부터 확장된다. 모퉁이 구석은 양자 모두에게 관계와 만남의 지점이었다.

미니멀 아트에서의 코너의 현상학. : Dan Flavin

플래빈의 표현대로 그의 코너 작품들은 후미진 구석으로부터 “코너를 끌어내는” 작업이었는데, 그 중 최초로 전시된 것은 코너에서 홀로 빛나는 분홍색 형광등 하나, <핑크 아웃 오브 코너(pink out of corner)>(1963)였다. 1960 년대 당시 뉴욕의 예술가들은 플래빈의 코너 작품들이 타틀린의 구축주의를 참조하고 지시하는 작업이었음을 어느 정도 인식.

여기에서 minimalism은 phenomenology와 연결된다.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의 체험을 작품 수용의 핵심으로 제시한 미니멀리즘은 현대미술의 장에 현상학적인 관람자, 즉 ‘육화된 주체(embodied subject)’를 전격적으로 등장시켰다. 순수한 시각으로 환원되는 형식주의 모더니즘의 탈육화된 disembodied 관람자는 이제 모든 감각이 작동하는 몸주체의 도전을 받는다. 현상학적인 몸주체는 지각과 체험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구성되고 재규정된다. 미니멀리즘이 프로세스 아트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것이 놀랍지 않은 이유다. Richard Serra의 coner prop도 포함.

관계의 미학과 코너. : Felix Gonzales Torres

곤잘레스-토레스는 제도비판미술과 차용미술로 대표되는 1980 년대의 비판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직접적인 세례를 받았다. 그의 작품은 기꺼이 기념품이 되어준다. 그것은 특정한 한 장소에서 무수히 많은 불특정한 영역으로 산포되어 깨달음의 징표나 추억의 대상으로 간직된다. 그에게 기념품은 공적인 전시를 사적인 체험으로, 거대한 역사를 소소한 개인사로 변형시키는 방식이다. 그의 선물은 부리요가 제안한 관계적인 예술, 유연하고 유동적이며 개방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미학의 정수를 그대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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